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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틀쥬스>,1988, 팀 버튼

넷플릭스에서 <비틀쥬스 비틀쥬스>를 먼저 보고 1편인 <비틀쥬스>가 너무 궁금했는데,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기내 상영작 목록에서 <비틀쥬스>를 발견하고는 얼마나 기뻤던지.

대표작도 안 본 내가 팀 버튼 감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애.그렇지만 책을, 영화를,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비틀쥬스를 안 좋아하는 건 반칙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 같애.

여느 죽음처럼 영화 속 아담과 바바라의 죽음도 예측 불가능한 해프닝처럼 찾아오지만, 망자에 대한 애도나 상실의 슬픔은 산 사람들의 몫으로써 과감히 생략된다.대신 영화는 이제 막 죽은 한 커플이 직면한 당혹감에 초점을 맞춘다. 125년 간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고 남이 망치는 내 집을 눈 뜨고 지켜봐야만 하는 죽은 커플과, 그 집을 뜯어 고치다 못해 돈벌이 삼고 싶은 산 커플 사이의 치열한 공방전! 귀신 들린 집을 새내기 유령들의 눈물겨운 내 집 지키기로 상상하는 순간,사후 세계와 죽은 존재들은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절대 섞일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세력은 우여곡절 끝에 딸 같은 리디아를 중심으로 공존에 성공한다.딜리아를 계모로 설정한 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서로를 선택한 두 부모 한 자식 가족.. #이것도_대안가족이야 .

어쨌든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행복한 얼굴로 허공에서 춤추는 리디아를 보고 있다 보면 마음이 뭉클하고, 산 사람들의 세계에서도 죽은 사람 마냥 비가시화 되거나, ‘비정상’으로 낙인 찍힌 사람들을 떠올려보게 된다.결국 이 영화는 죽음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각자 생긴 모습대로 더불어 잘 살 수 있을까?’를 겨누고 있다고 생각.

+

갓 죽은 사람이 번호표를 뽑고 행정 처분을 기다린다는 상상 자체는 다른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비틀쥬스>가 특별한 이유는 그런 상상을 유쾌한 디테일로 밀어붙이기 때문이 아닐까? 2편에 등장하는 훵키 디스코가 흘러나오는 천국행 급행열차, 이른바 ‘소울트레인’이나, 골 때리지만 정감가는 비틀쥬스라는 캐릭터, 다락방의 미니어처를 중심으로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넘나드는 듯한 환상적인 프로덕션, 그리고 기괴하고 비정상적인 신체들로 구현된 망자들까지 – 어떤 상상들은 공포나 소외감, 상실 같은 감정을 정면으로 건드리지 않고도 강한 위로가 되어주는데,<비틀쥬스>는 그런 상상의 힘을 환상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상반신이 없거나 납작하게 눌렸거나 불에 타는 등, 신체의 상당 부분이 훼손되어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될 법한 모습도 비틀주스의 세계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지던 것. 각자의 사연이 외형으로 직관적으로 드러나는데도 ‘아 그렇군요’ 하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 들여지던 것. 이 정도면 차라리 유토피아야.

아담과 바바라의 사랑은 그야말로 죽음조차 갈라 놓지 못한 사랑이다. 낯설고 당혹스러운 상황을 이겨내려 변화를 감수하고, 서로의 변화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계는 분명 눈물 날만큼 감명 깊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유령 신부>를 아직 안 보긴 했지만 <웬즈데이>에서도 그렇고 괴짜이지만 서로 죽고 못 사는 닭살 커플, 이거 좀 자가복제 같은 느낌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