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비틀쥬스 비틀쥬스>를 먼저 보고 1편인 <비틀쥬스>가 너무 궁금했는데,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기내 상영작 목록에서 <비틀쥬스>를 발견하고는 얼마나 기뻤던지.
대표작도 안 본 내가 팀 버튼 감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애.그렇지만 책을, 영화를,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비틀쥬스를 안 좋아하는 건 반칙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 같애.
여느 죽음처럼 영화 속 아담과 바바라의 죽음도 예측 불가능한 해프닝처럼 찾아오지만, 망자에 대한 애도나 상실의 슬픔은 산 사람들의 몫으로써 과감히 생략된다.대신 영화는 이제 막 죽은 한 커플이 직면한 당혹감에 초점을 맞춘다. 125년 간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고 남이 망치는 내 집을 눈 뜨고 지켜봐야만 하는 죽은 커플과, 그 집을 뜯어 고치다 못해 돈벌이 삼고 싶은 산 커플 사이의 치열한 공방전! 귀신 들린 집을 새내기 유령들의 눈물겨운 내 집 지키기로 상상하는 순간,사후 세계와 죽은 존재들은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절대 섞일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세력은 우여곡절 끝에 딸 같은 리디아를 중심으로 공존에 성공한다.딜리아를 계모로 설정한 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서로를 선택한 두 부모 한 자식 가족.. #이것도_대안가족이야 .
어쨌든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행복한 얼굴로 허공에서 춤추는 리디아를 보고 있다 보면 마음이 뭉클하고, 산 사람들의 세계에서도 죽은 사람 마냥 비가시화 되거나, ‘비정상’으로 낙인 찍힌 사람들을 떠올려보게 된다.결국 이 영화는 죽음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각자 생긴 모습대로 더불어 잘 살 수 있을까?’를 겨누고 있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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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죽은 사람이 번호표를 뽑고 행정 처분을 기다린다는 상상 자체는 다른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비틀쥬스>가 특별한 이유는 그런 상상을 유쾌한 디테일로 밀어붙이기 때문이 아닐까? 2편에 등장하는 훵키 디스코가 흘러나오는 천국행 급행열차, 이른바 ‘소울트레인’이나, 골 때리지만 정감가는 비틀쥬스라는 캐릭터, 다락방의 미니어처를 중심으로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넘나드는 듯한 환상적인 프로덕션, 그리고 기괴하고 비정상적인 신체들로 구현된 망자들까지 – 어떤 상상들은 공포나 소외감, 상실 같은 감정을 정면으로 건드리지 않고도 강한 위로가 되어주는데,<비틀쥬스>는 그런 상상의 힘을 환상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상반신이 없거나 납작하게 눌렸거나 불에 타는 등, 신체의 상당 부분이 훼손되어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될 법한 모습도 비틀주스의 세계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지던 것. 각자의 사연이 외형으로 직관적으로 드러나는데도 ‘아 그렇군요’ 하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 들여지던 것. 이 정도면 차라리 유토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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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바바라의 사랑은 그야말로 죽음조차 갈라 놓지 못한 사랑이다. 낯설고 당혹스러운 상황을 이겨내려 변화를 감수하고, 서로의 변화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계는 분명 눈물 날만큼 감명 깊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유령 신부>를 아직 안 보긴 했지만 <웬즈데이>에서도 그렇고 괴짜이지만 서로 죽고 못 사는 닭살 커플, 이거 좀 자가복제 같은 느낌 들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