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 지피티를 알게 된 지 3년이 되어간다. 그러니까 채 3년이 안되는 동안,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제대로 파악할 틈도 없이 급류가 온 세상을 휩쓴 셈이다. 그런데도 아직 대변혁기의 초입이라고들 한다. 매일 쏟아지는 무슨 무슨 AI툴, 그걸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더라, 개인이 생산자가 되어 아이디어만 있으면 돈을 벌 수 있다더라 . 안 하면 등신-
흐름에 올라타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공포감에 쫓기던 때에 <모두를 위한 자유>를 읽었고, 좁은 시야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막연히 느꼈졌던 이질감과 변혁의 시대를 추동하는 힘을 높은 해상도로 볼 수 있게 되었고, 변화를 반기거나 우려를 쏟아내는 양쪽 진영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뜯어볼 수 있었다. 특히 분야를 가리지 않는 방대한 지식과 그걸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기술, 그리고 시니컬하면서도 인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은 태도가 일관되게 드러나는 문장들이 좋았다. 하지만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건 책이 주장하는 바 때문일 것이다: 무조건적인 기본 소득.
일견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보이는 이 주장은 책을 읽어나감에 따라 실현 가능하고, 논리적으로 타당하며 무엇보다 사회의 혼돈(과 아마도 많은 죽음..)을 막기 위해 꼭 실현되어야만 하는 방향처럼 여겨지게 된다.
생업을 위해 노동해야 한다는 생각은 구시대의 것이다. 애초에 노동이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사회의 모습에 따라 바뀌어 왔으니까. 생업 노동의 개념은 산업 시대 즈음 생겨났는데, 모두가 노트북과 핸드폰을 가지고 (의미)생산 수단을 스스로 점유할 수 있게 된 정보사회에서는 생산력을 빌려주고 대가로 금전을 받는 기존의 모델은 그 필연성을 상실했다. 하지만 생업 노동에 대한 믿음, 즉 노동할 수 있는데도 일 하지 않으면 사람으로서 자존감과 삶의 의미가 사라질 거라는 선입견이 너무 강한 나머지,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들이 필요한 변화를 모른척 미루고 있다는 것.
(생업)노동이 신성한 것, 시민의 의무처럼 여겨지는 것과 달리 실제 현실에서 사람들이 생계를 생업노동에 의지 하려 들지 않은지는 한참 됐다. 건물주가 되고 싶다는 소망도 낡았고, 부의 파이프 라인, 경제적 자유, 코인으로 인생역전 같은 것도 몇 년 전 부터 나온 이야기. 요즘은 학생들조차 유투브, 인스타 틱톡, 온갖 잡지식 포타팔이와 틱톡 라이트 다단계로 돈을 번다. 더군다나 온갖 기술 발달이 전통적 일자리 해체를 가속하는 마당에 성장률같은 지표나 근로소득 기반 세금에 의존하는 현재의 체계는 평화로운 존속이 힘들 거라는 거.
‘거대한 해고의 물결은 전반적 문화 변화보다 한참 앞서 온다. 돈이 성과에 대한 확고한 보상이라는 문화가 지배하는 한, 실업은 모든 당사자에게 심한 타격을 줄 수 밖에 없다. 고소득자야 생업노동과의 관계를 바꾸고 유연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자기 삶을 살겠지만 디지털 시대의 많은 낙오자들은 더 이상 자기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떠올리지 못한다. “
”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경제적 이성을 뛰어넘어 생각할 수 있을까? AI와 로봇이 노동을 대체하고 시간이 주어졌을 때 돈과 재산, 지위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찾아낼 사람이 얼마나 될까? .(…) 경험이 가르치는 바에 따르면 우리는 대개 할 일이 있을 때에만 아무 할 일이 없다는 것을 감사히 여긴다.
‘마르크스 라파르그, 와일드 조차 찢어지게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임금노예들이 자기 삶의 예술가, 즉 그들 자신과 같은 인간이 되는 길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그리고 2차 기계시대에 일자리를 잃을 사람들이 반드시 창의적이지는 않을 거라는 건 확실하다.’
맞말추 ㅋㅋ
” 완전자동화가 진척될수록 노동시장에서 필요한 인원은 줄어든다. 그런데 임금을 받는 사람이 적어질수록 완전 자동화로 생산된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사람도 적어진다.따라서 ‘새로운 소득분배정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둘 다에게 재앙이 닥친다. “
그러므로 우리는 노동이 신성하다는 믿음을 버리고, 노동과 소득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내고 새 시대에 맞는 소득분배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 애매한 복지 확충은 논리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시간을 끌 뿐이라는 것. 저자는 문제의 지적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모색하는데 그건 각자 읽어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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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의 기원을 살펴보는 챕터에서 백 년도 더 전에 기본 소득을 주장한 사람을 알게 됐다. 연구서에서 만난 실존했던 삶은 소설보다 더 큰 울림을 주는 것 같음..
초기 사회주의 자였던 토머스 스펜스(thomas Spence)는 25세이던 1775년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본질적으로 모두에게 속한 것이 어떻게 한 개인의 손에 들어가도록 허용할 수 있는가? ” 스펜스에게 토지의 개인 소유는 실존적 불의 였다. 누군가에게 삶의 수단을 빼앗을 권리는 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 스펜스는 대중의 물질적 자유를 위해 열정적으로 싸웠다. 또한 페미니즘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펜스는 페인과 마찬가지로 대중에게 잊힌 채 가난 속에서 쓸쓸하게 죽어갔다.(..) 하지만 스펜스야 말로 적선이 아니라 만인의 권리로 보장받아야 할 무조건적 기본소득의 아버지이다.
저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richard David Precht
1964 독일 출생. 쾰른 대에서 철학과 독일문화, 예술사 공부. 1994년 독일문화연구로 박사학위. 뤼네부르크대,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음대에서 철학 및 미학 초빙교수로 재직. 대표 저서로 <나는 누구인가>와 <철학하는 철학사> 시리즈가 있다.
역자: 박종대
성대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후 쾰른에서 문학 및 철학 공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저서를 포함해 200권 넘는 책을 번역했다.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로 2024년 한독문학 번역상을 수상했다.














